당신들의 천국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2 『당신들의 천국』
이청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5판) 2005년


10년 전에 읽었다. 읽고 나서 한참 여러 말을 떠들고 다니기도 했다. 10년이 지나니까 그 내용도 떠오르지 않고, 내가 떠들던 말도 생각나지 않는다. 뭘 읽고 뭘 떠든 걸까? 망각의 축복일 수 있겠는데, 다시 읽으면서 그 의문이 더욱 짙어진다. 그땐 뭔가를 읽어냈으니까 떠들었던 것일 텐데, 이번에 생소한 느낌으로 다시 읽으면서는 보니까 뭐가 이렇게 복잡한지. 내 독서능력이 저하된 것이거나, 아니면 10년 전에는 벌써부터 ‘읽지 않고 읽은 척 하는 독법’을 터득하고 있었거나. ‘읽지 않고 읽은 척 하는 독법을 터득하고 있었다면, 이제 와서 그 독법을 모를 수 있긴 한 건지도 의심스럽고.

10년 전에는 나 나름의 확고한 독법이 있긴 했던 거 같다. 그랬으니 그 어떤 실마리를 중심으로 『당신들의 천국』을 읽었을 테고, 그 가느다란 실마리만으로 다 읽은 것처럼 떠벌리고 다녔을 테고, 그랬을 거 같긴 하다. 지금 다시 읽으면서 복잡한 구도로 보이는 건, 그만큼 시야가 넓어진 것일 수도 있겠고. 확장된 시야를 얻긴 했으나, 곳곳에 숨은 움직임을 포착할 만큼의 날카로움은 미처 획득하지 못하고 있는 수준이라고 할까.

다시 읽었다고 하지만, 다시 읽으면서도 ‘그래 맞아맞아, 이런 내용이었지’ 하는 걸 떠올리지 못했다. 처음 읽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정도의 사전 정보만을 갖고 읽었다. 소록도와 나병이라는 태그 정도가 기억되고, 중심인물인 조백헌 원장이 실재 인물이라는 정도. (5년 정도 전에는 소설의 모델이 되었다는 조창원의 자서전까지 읽었으면서도 이런다.)

이상욱이라는 인물이 등장할 무렵, 아 이사람! 싶긴 했지만 중요한 인물이었던 것 같긴 한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도무지 모르겠고, 아무튼 계속 읽어나가다 보니까, 이전에 내가 알던 그는 아닌 거 같고. 아무튼 오락가락 하면서 갈피가 잡히지 않는데, 다 읽고 나서 보니까 대략적인 구도가 보이긴 한다. 그리고 추정컨대 10년 전 읽고 떠들었다면 조백헌 원장에 대한 것보다는 이상욱에 대한 얘기였을 거다. 황 장로의 입을 빌어 장황하게 서술되는 ‘사랑’과 ‘자유’에 대한 문제제기에서, 10년 전 ‘자유롭게 행하는’ 쪽에 위치한 이상욱의 편을 들었던 거 같다. 그리고 이번에 읽으면서는 이상욱의 뒤틀린 심사가 엿보이면서 조금 기운 위치로 옮겨간 것 같다. 그렇다 해도 아직까지는 조백헌 원장의 편을 들진 못하겠고.

조백헌 원장을 폄훼할 건 아니다. 황 장로의 말대로 조백헌 원장이 ‘사랑’으로 이끌었다면 그것으로 훌륭한 일일 수는 있다. 또 그만큼 조백헌 원장은 성장이라는 걸 하고 있다. 하지만 그걸로 소록도에 제시된 ‘천국’이라는 것이,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은 계속되어야 할 거 같다. 탈출과 배신을 꿈꾸는 건, 그 천국이 ‘문둥이들의 천국’으로 제한된 곳일 수도 있겠기 때문이다. 조백헌 원장에게는 그러한 숙제를 남겨 놓은 채 『당신들의 천국』은 하나의 상징적인 결혼식으로 끝이 난다. 천국은 ‘당신들’의 것이건 ‘문둥이들’의 것이건, 아직 도래하지 않았고, 희미한 가능성만 제시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자유롭고자 하는 ‘이상욱들’은 어떠한 태도를 취할 수 있을 것인가? 조백헌 원장에게 필요한 건 ‘진정’이겠고 ‘이상욱들’에게 필요한 건 무엇일까?

잠깐 생각해 보다가 짜증이 인다. 지금은 주정수가 원장 노릇하던 때보다 더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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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구는 못말려 (극장판 3기) - 흑부리 마왕의 야망 (クレヨンしんちゃん 雲黒斎の野望, 1995) 이것 또한 내 세상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 3기) - 흑부리 마왕의 야망 (クレヨンしんちゃん 雲黒斎の野望, 1995)>


타임 패트롤 대원이 되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옮겨간다. 때는 16세기 후반 전국시대. 거기서 벌어지는 에피소드가 끝났나 싶더니 현재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실수로 인해 미래에 도착한다. 전혀 다른 분위기의 두 가지 영상이 나란히 놓이면서 대비된다. 타임머신이라는 SF 소재를 활용한다지만 과거는 역사라는 배경을 지니고 있어 판타지의 몫은 크지 않다. 반면 미래에 펼쳐지는 장면은 그림부터가 판타지일 수밖에 없다. 온갖 사물들이 조잡하게 엮어 붙인 것처럼 디자인(?) 된 의상과 건축 등을 비롯한 기계 장치 등은 과거보다 훨씬 큰 정교함을 요구한다. 그러나 미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 건 아니어서 그런지 그저 현란할 뿐이다. 어느 정도는 팝 아트의 느낌이 가미되어 있는 거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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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 (CHAOS, 2011) 이것 또한 내 세상

<카오스 (CHAOS, 2011)>


CIA. 이렇게 생겨먹은 이니셜은 매번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FBI, KGB. KGB는 소련이니까 전혀 다른 곳이겠고. 아무튼. 몰라몰라.

카오스, 라는 제목은 딱 거기까지만 혼돈을 허락한다. 제목과 달리 이야기는 굉장히 단조롭다. 스파이라는 설정에 가미될 수밖에 없는 가벼운 액션이 있고, 너무 무겁게 다뤄지는 집단이라는 각성 때문인지 애써 코믹으로 포장한 기미도 엿보이긴 한다. 미국 내부 집단이어서 어쩔 수 없는 국수주의의 냄새가 더해진다. 자국민을 보호하는 프로젝트는 훌륭할 수도 있겠지만, 그에 대한 도덕적 가치 평가는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결론은, 쉽게 말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미국은 힘이 세다, 는 정도가 되겠다.

두 번째 에피소드에는 북한이 배경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미국드라마에 등장하는 남한도 색다르지만, 북한은 더욱 흥미롭다. 미국에서 제작된 것인데, 북한에 대해서는 남한에 거주하고 있는 내가 좀 더 친숙할 거라는 이상한 믿음이, 눈을 크게 뜨게 만든다. 미국의 눈에 비치는 북한, 그 속 어딘가에는 옥에 티 같은 게 있으리라는, 이상한 기대. 그걸 찾아낼 수 있으리라는 짓궂은 관심에서 비롯되는 그런 거. 그런데 내 기대를 저버리고, 북한은 그냥 북한답게 그려져 있다. 구사되는 조선어(?)도 자연스럽고, 곳곳에 보이는 선전 문구들의 조선식 표기(?) 역시 멀쩡하다. 기대하던 옥에 티를 발견하지 못한 뒤의 허전함은, 북한을 바라보는 시선에 있어서 내 눈이 미국의 눈보다 밝지 못하다는 것에서 비롯된 거 같기도 하고. 또 그게 사실인 거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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