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07일
황혼의 집

『황혼의 집』
윤흥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개정판) 2007년
소년의 눈에는 모든 사건이 선명하게 비치지 않는다. 어린놈이 뭘 알까 싶어서인지 어른들은 소년에게 자세한 설명을 해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전혀 모르는 것도 아니다. 표면에 드러나는 현상을 인지하지 못할 만큼 미숙하진 않다. 소년 나름으로 보고 들은 정황들을 유추할 수는 있다. 많은 사건이 소년 바깥에서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소년은 벌어진 사건의 결과만 마주하게 될 뿐이다. 「황혼의 집」의 화자는 그렇게 선명하지 않은 이야기를 명쾌하지 않게 더듬어 나간다. 소년은 이제 막 유치가 빠질 나이일 뿐이다.
소년과 경주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그것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게 얼마 없다. 그네들에게 벌어지는 일들은 이미 일어난 일이거나 먼 곳에서 일어나는 일이거나 어른들의 일이다. 그렇다고 소년과 경주가 그 현장에서 소외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벌어지는 일들의 결과를 고스란히 지켜보고 있다. 이끌려가기도 하고, 이끌려오기도 한다. 관찰자로서 개입하고 있으며 살아있는 감정이 꿈틀거리며 작은 제스처로 반응하기도 한다. 유치가 빠지고 새 이가 나는 성장의 과정이다. 맞아도 전혀 아플 것 같지 않을 주먹질 정도.
소년과 경주가 직접적으로 개입되는 장면도 보이긴 한다. 화경(火鏡), 즉 돋보기를 들고 개미를 태워 죽이는 장난질이 그것이다. 「황혼의 집」을 보면서 안과 밖이 경계를 염두에 두고 읽게 되는 건 이 때문이다. 돋보기 장난질에서 개미들은 처절하게 죽어가지만 그 원인은 개미들 바깥에 있다. 개미들에게 벌어지는 일들의 원인이 개미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듯, ‘나’와 경주에게 일어나는 일들의 원인 또한 그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나도 그랬던 적이 있다. 어릴 적 잠자리 따위를 잡아서 거미줄에 걸어주고 거미의 동작을 지켜본 적이 있고, 잘 아는 길모퉁이 개미집 입구에 던져놓고 개미들의 부지런한 움직임을 바라보고 있던 적도 있다. 내가 개입해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그 세계는, 어린 나의 세계였는지도 모른다. 어른들의 세계 속에서는 끼어들어봐야 땡깡 밖엔 안 되는 무력함이, 그렇게 나의 세계를 탐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 by | 2009/11/07 05:54 |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 트랙백 | 덧글(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