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집

『황혼의 집』
윤흥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개정판) 2007년


소년의 눈에는 모든 사건이 선명하게 비치지 않는다. 어린놈이 뭘 알까 싶어서인지 어른들은 소년에게 자세한 설명을 해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전혀 모르는 것도 아니다. 표면에 드러나는 현상을 인지하지 못할 만큼 미숙하진 않다. 소년 나름으로 보고 들은 정황들을 유추할 수는 있다. 많은 사건이 소년 바깥에서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소년은 벌어진 사건의 결과만 마주하게 될 뿐이다. 「황혼의 집」의 화자는 그렇게 선명하지 않은 이야기를 명쾌하지 않게 더듬어 나간다. 소년은 이제 막 유치가 빠질 나이일 뿐이다.

소년과 경주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그것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게 얼마 없다. 그네들에게 벌어지는 일들은 이미 일어난 일이거나 먼 곳에서 일어나는 일이거나 어른들의 일이다. 그렇다고 소년과 경주가 그 현장에서 소외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벌어지는 일들의 결과를 고스란히 지켜보고 있다. 이끌려가기도 하고, 이끌려오기도 한다. 관찰자로서 개입하고 있으며 살아있는 감정이 꿈틀거리며 작은 제스처로 반응하기도 한다. 유치가 빠지고 새 이가 나는 성장의 과정이다. 맞아도 전혀 아플 것 같지 않을 주먹질 정도.

소년과 경주가 직접적으로 개입되는 장면도 보이긴 한다. 화경(火鏡), 즉 돋보기를 들고 개미를 태워 죽이는 장난질이 그것이다. 「황혼의 집」을 보면서 안과 밖이 경계를 염두에 두고 읽게 되는 건 이 때문이다. 돋보기 장난질에서 개미들은 처절하게 죽어가지만 그 원인은 개미들 바깥에 있다. 개미들에게 벌어지는 일들의 원인이 개미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듯, ‘나’와 경주에게 일어나는 일들의 원인 또한 그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나도 그랬던 적이 있다. 어릴 적 잠자리 따위를 잡아서 거미줄에 걸어주고 거미의 동작을 지켜본 적이 있고, 잘 아는 길모퉁이 개미집 입구에 던져놓고 개미들의 부지런한 움직임을 바라보고 있던 적도 있다. 내가 개입해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그 세계는, 어린 나의 세계였는지도 모른다. 어른들의 세계 속에서는 끼어들어봐야 땡깡 밖엔 안 되는 무력함이, 그렇게 나의 세계를 탐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by 상큼한좀비통조림 | 2009/11/07 05:54 |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 트랙백 | 덧글(0)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 작가노트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 작가노트』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4년


한동안 때 지난 드라마를 몰아보며 지냈다. 그걸 알고 있던 이가 물었다. “요즘은 뭐 봐?” 그때 나는 드라마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좀 엉뚱한 대답을 하게 됐다. “현대미술.” 그러면서 이런 말을 보탰다. “생각 외로 재밌어.” 그때 나는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를 읽는 중이었다. 『미학 오디세이』 바로 전에도 현대미술과 관련된 책을 몇 권 더 봐둔 게 있긴 했다.

생각 외로 재밌다는 나의 반응에 되돌아온 질문은 “그게 보여?”였다. 사실 안 보인다. 안 보이는데, 재밌다. 뭐라고 명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보면 볼수록 저들은 꼴통이라는 걸 확인하게 된다. 여기서 꼴통은 절대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일반인들의 고착된 사유 패턴을 전복시키는 유쾌한 꼴통짓은 미처 장르를 얻지 못하고 있다. 혹 장르라는 걸 얻었다고 하더라도, 그건 저들 꼴통짓을 따라가는 기표일 뿐이니까. 하여튼 꽤나 재밌게 보고 있던 중이었다. 고개를 설레설레 젓게 만들 만도 한데 재미를 얻을 수 있었던 데는 진중권의 몫이 커 보인다.

“책읽기의 목적이 미로 밖으로 빠져나가기 위한 것이라면 그 목적은 이루어질 가망이 없다. 그런 목적으로 책을 읽는 이들은 미로 밖으로 나가게 해줄 최종적인 책을 찾아 일생을 도서관 안을 헤매다가 해골의 신세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출구를 찾을 희망 없이 미로 속을 떠도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물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이 책에서 저 책으로 텍스트의 미로를 헤매어보라. 최종적인 출구를 발견하지 못해도 그럭저럭 원하던 해답은 얻을 수 있다. 놀랍지 않은가? 책을 읽는 것은 미로에서 빠져나오기 위함이 아니다. 그 안에서 현명하게 길을 잃기 위함이다.”

얼마 전에는 누군가 내 블로그를 둘러보고는 이 종잡을 수 없는 독서리스트에 고개를 갸우뚱한 적이 있다. 그에게는 내 블로그의 특정한 색채가 보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독서리스트를 보고 내 관심분야가 어디에 놓였는지 알 수 없다는 얘기겠는데, 사실 그건 나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나 나름으로 현명하게 길을 잃기 위해, 온갖 시행착오를 감행하고 있는 중이다. 어차피 출구가 없다면 길 좀 잃으면 어떤가.

 

by 상큼한좀비통조림 | 2009/11/03 00:25 |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 트랙백 | 덧글(0)

자전거 여행

『자전거 여행』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0년


창문이 바람에 흔들린다. 바람을 막아내는 몸짓이다. 겨울은 그렇게 혹독하다. 11월에 접어들면서 바람이 거세어졌다. 더위를 식히는 바람은 간데없고 추위를 몰고 오는 바람이다.

내게도 자전거가 한 대 있다. 레저용은 아니고 어정쩡한 거리를 오갈 때 타고 내리는 교통수단이다. 나와 함께 보낸 시간이 5년쯤 되나? 지금 앉아 있는 책상 건너 창문을 열면 마당 같지 않은 좁은 마당 한 구석에서 겨울을 준비하는 자전거가 보인다. 곧 녀석과 나는 내외하게 되리라. 공기가 찰 때 타는 자전거는 방한 장비를 무색케 한다. 장비라고 할 만한 걸 갖추고 있지도 않지만.

계절은 자전거를 놔두라 한다. 겨울에는 둔한 옷차림을 하고서라도, 좀 걷자.

 

by 상큼한좀비통조림 | 2009/11/02 11:58 |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 트랙백 | 덧글(0)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